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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MINDSET

내 끌어당김의 비밀

by Wendesday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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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보라는데, 그 단순한 말만으로도 내 멘토한테 화가 났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마인드가 충만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질투와 비교의식에 쩔어서 살던 때도 있었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거나 한 때 사람을 혐오한 적도 있었으며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시기도 있었다.
 
아마 내 최악은 이민 후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반이였을거다.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았고, 남는 시간에는 짬짬이 지속해 온 크리에이터라는 취미를 이제 작정하고 수익화시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시작을 하지 못했다. 이민과정에서 느꼈던 사람에 대한 불신이나 앞으로 어떻게 잘 먹고 잘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이 계속 나를 짓눌렀다. 게다가 까다로워서 광고도 안 받는 내가 과연 수익화를 하기나 할 수 있을는지 의심이 들었다.
동시에 집 문제, 저질 건강상태, 강아지 병원비 등 여러 개인적인 상황들도 있었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를 방해하는 기분이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가 터지면서 뭔가에 집중하게 날 내버려두질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슨 개떡 같은 일이 생길까 싶어서 가슴이 답답했다.
어쩌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오랜만에 컨텐츠를 만들고 싶어도, 이런 마음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싶어 망설이다 하루가 끝났다. 용감무쌍하게 컨텐츠를 올리던 내 과거 영상들을 보며, 내게 대단한 도전을 했다며 사람들이 해주는 칭찬들도 그때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내게 고민상담을 해오는 구독자들에게 해줄 얘기가 없었다. 과거 영상들 속 반짝이는 내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어디에도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는 하고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그 무기력증을 결국 극복해 냈기에 쓰는 글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지만 뭔가 '이거다!'싶은 게 없었다. 갑자기 귀인이 나타나 알려주면 좋으련만. 이렇게 영영 죽을 때까지 내 버거운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구나.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속으로 간절히 불러댔다. 어느 날 눈 떴을 때, 희망찬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한숨부터 쉬고 허둥지둥 출근하느라 바쁜 내게 갑자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에게 크리에이터가 되라고 동기부여를 하지만, 이 당시에 나는 크리에이터로서는 이제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틈틈히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개인사업들을 알아보던 중, 소개받은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의 온라인 팀미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배운다는 마음보다는 뭔지 알아나 보자는 마음이었고, 아직 나는 이 일이 내가 간절히 불러서 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고 당연히 확신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감정이 내 안에 꾹꾹 쌓여있음을 느꼈다. 마인드셋을 키우기 위한 북미팅을 하니까 책을 사서 보라는데, 그 단순한 말만으로도 내 멘토한테 화가 났다. 정말로 가슴속에 뜨거운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내 안에 울분이 쌓여있었다.
여기서는 한국어로 된 책을 빌릴 도서관조차 없다는 아주 작은 사실직시에도 스스로 황당하리만큼 화가 치밀었다. 내가 아직 배움을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잘 읽히지도 않는 원서를 빌려 읽는 노력까지는 하기 싫었다.
 
당시 겉으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발악을 하고 있었지만 내적으로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고, 꾹꾹 누른 감정이 터져 나와 어쩌다 눈물이 한 번 흐르면 걷잡을 수가 없었다. 감정조절조차 하지 못하는 거울 속의 내가 미워서 더 울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채로 공사장에서 일할 때도, 판데믹때 식당에서 일하며 진상손님들을 상대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캐나다에 와서 이렇게까지 힘들었던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의 성장은 완전히 멈춰있었고, 탈출구가 필요해서 새로운 도전을 알아보는 와중에 걸린 게 하필 마케팅이라니. 이런 감정상태로 크리에이터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소셜마케팅을 하란 말인가, 나는 지금의 날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국 사람들한테 들킬까 봐 너무 무서웠다.
 
한참 울고나면 역시 정신과 상담을 한 번 알아볼까 생각했지만, 당시에 케어기버 번아웃으로 상담을 받던 남자친구의 상담사가 자주 바뀌고 스케쥴링조차 잘 안 되는 것을 보고 저것조차 스트레스겠구나 싶었다. 다 의미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감정을 그냥 그대로 방치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에서 주는 멘탈상담 베네핏도 있었지만, 역시 내게 맞는 상담사를 찾는 과정 자체가 너무 골치였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는 정말 생각만 했다. 상황을 바꿀 의지까지는 없었기에 그렇게 계속 핑계나 만들어댔다.
 
지금은 누가 시키지않아도 매일 잘만 보는 책인데, 그때 책을 사서 보라는 말에 어이없게도 화가 났던 이유는 뭘까.
당장 카드값 낼 돈이 우선인데, 그래서 즐겨보던 스트리밍 서비스조차 다 중단했는데, 현재의 소비를 조금 더 줄여서 한 번 읽고 말 책이란 “사치품”을 살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삶이 빠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당장 고객이 필요한 사람한테 책이나 사서 읽으라니. 그보다는 좀 실질적인걸 알려주라고.

돌아보면 당시 내 주변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물론 판데믹 뒤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컸다. 당시에 만나는 모두가 자신의 임금과 렌트비,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 비관하고 있었고 당연히 나도 그중 하나였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고, 가진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 시기였을 거다. 나처럼 탈출 방법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중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자신을 위해 독서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던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아직 그럴듯한 목적이 없으니 어떤 종류의 책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하다고 했다.
 
나는 대학생때까지는 전공 관련 인문학책을 참 좋아했었다. 수험생 때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시집과 소설책을 읽어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철학, 인문학 책이나 자기 계발서가 물건을 파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당장 고객이 필요한 사람한테 책이나 사서 읽으라니. 그보다는 좀 실질적인걸 알려주라고.
 
그 즘에 네트워크 마케팅 팀미팅에 들어가면 저 여유로운 사람들의 빛나는 얼굴이 부러웠다. 나는 당시에도 재택근무를 했음에도 왠지 모르게 늘 시간에 쫓겨서 요리를 하거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겨우 강의를 허겁지겁 켜는데, 방금 때 빼고 광내고 온 것처럼 얼굴에서 빛을 뿜으며 눈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사람들이 화면 속에 가득 앉아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떤 제품을 쓸까? 아마 더 좋은거겠지?'
사람들이 내 피부가 제일 예쁘다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는 걸로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 사업 주력 아이템이었던 스킨케어 디바이스로 하루 2분 피부관리는 안 빼먹고 했다. 왠지 저 사람들과 닮으면 결국 나도 저런 열정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조금 있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준비라도 해야지. 그 2분이 내게 약간의 희망을 주는 시간이었다.
 
그 외에는 비관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고, 남한테 기대 살 생각도 한 적이 없고, 쓸데없이 과소비하지도 않았고, 술 같은 거에 돈을 흥청망청 쓰지도 않았는데, 왜 계속 가난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까. 왜 난 남들처럼 더 많이 일할 수가 없을까. 나의 노후는 누가 책임질까. 팀미팅 화면 속의 사람들처럼 빛나는 마음이 과연 내 안에도 있을까.
 
그런 생각들에 빠진 이유는 내 새로운 직업의 역할이 컸다. 병원 및 정부지원기관, 금융기관 등의 통역을 하며 늙고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내 입으로 전하다 보니 그들의 삶에 너무 공감해 버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 이민하고 정착하고 잘 살기 위해 현지인들보다 두 배로 노력했을 사람들이 어째서 늙고 아픈데 돈까지 없는 걸까.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미래가 보였다. 5불, 10불이라는 적은 액수의 지원금이 줄어도 울거나 화를 내는 사람들, 추가적인 의료검사가 필요한데 보험처리가 100% 안되어 절망하는 사람들, 당장 안경이나 틀니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너무나 다양했다.
그중에는 전혀 자기 잘못이 아닌데 큰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큰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어서 자신의 시간을 모두 그 아이에게 쏟고 있거나, 경제상황으로 사업이 완전히 망하고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외롭고 우울하고 화로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내 불안은 극대화되었고, 내 미래를 자꾸 보여주는 것만 같았던 그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고통스러워서 나는 당시에 하루에 고작 6시간 일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은 최소 나보다 열심히 일했을 텐데, 이렇게 돈 버는 게 다 무슨 의미인가'하는 최악의 생각까지 했다. 맞다, 가끔 T같이 말하지만 나는 극 F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는 대문자 F라는 생각에 빠져 날 위하는 사람들의 조언조차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상담이 필요한 상태였다.
 

같은 스크린 속에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였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대신 통역사 동료들과 대화하기를 택했다. 단톡방 속의 내 원격 동료들은 퇴근하고 나서도 근무 중에 만난 이상한 환자나 의사들, 황당한 일들이나 회사에 대해 불평을 했다. 물론 재밌기도 했고 일에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었지만 딱히 “발전적인”대화는 없었다.
나는 그 대화 속에서 위로받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덜거리며 출퇴근도장을 같이 찍는 사람들과 함께 그 늪에 빠지기로 했다. 그게 스트레스를 풀어내기에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내 불평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사람들 밖에 없었으니까.
 
얼마 후, 내게는 새로운 단톡방이 하나 생겼다.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네트워크 마케팅 팀의 단톡방에 초대받았다. 모르는 사람들의 눈빛과 에너지가 좋아서 사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팀미팅을 그냥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길일지 아닐지는 몰라도, 소속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도 거기에 속해있는 것이 그냥 기분이 좋았다. 나의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소 뭔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도 줬다.
처음 이 단톡방에 초대되었을 때는 사실 귀찮았다. '읽어야 할 게 하나 늘었다니! 난 아직 준비가 안되어있는데...' 그래서 당연히 살짝살짝 눈팅만 했다.
새 단톡방 속의 사람들은 책을 읽고 좋은 내용을 공유하고, 늘 뭔가에 감사하고 서로 축하했다. 그 책 내용이 문득 궁금해지게 만드는 말들을 했다. 통역사 동료들과 불평을 늘어놓다가 이 새로운 단톡방을 켜면, 같은 스크린 속에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였다. 혼란스러웠다. 매일 누군가와 일얘기를 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은지 질문받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읽는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쯤에 뜬금없이 밥이나 한 끼 먹자고 연락을 했던 구독자를 만났다. 당시에 바쁘단 핑계를 대며 사람들을 잘 만나고 있지 않았는데 왠지 이 사람을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언니는 꿈이 뭐예요?”
나는 내가 절대 이룰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계속 간직해 온 꿈을 하나 말해주었고, 그 친구는 내가 이미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누는 영적인(?) 대화가 즐거워서 우리는 맥주까지 마시러 갔다. 그런 내게 그녀가 갑자기 조심스레 물어봤다.
“언니, 혹시 시크릿이란 책 읽어보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인데 언니도 이미 읽으셨을 것 같아요. 그냥 얘기하다 보니 그렇게 느껴져서요.”
나는 대답대신 그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는 미래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현재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The Secret 은 내가 열정 넘치던 대학생 때 정말 좋아했던 책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접했으나 사실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상한 종교서적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다. 그리고 대학교 전공에 회의감을 느낄 때쯤, 도서관에 전공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우연히 정리되지 않은 반납책 무더기 맨 위에서 이 책을 다시 발견했고 덥석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앉은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읽었다.
 
그 뒤로도 한 동안은 뭔가가 막힌 느낌이 들 때 이 책이 생각이 나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주변 사람에게도 많이 추천했었다. 당시 사귄 전남친은 이 책을 혐오했지만, 나는 이 책으로 삶의 비밀을 정말로 깨달은 느낌이었다. 이 책은 내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곳에 가보거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이끌어주었고, 정말 내가 원하대로 이뤄지는 소름 돋는 일들이 자주 생겼다.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시기적절하게 내 곁으로 데려다주었다. 졸업 후 먹고사는 것에 찌들어 나는 이 책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구독자를 만나고 온 날, 집에 오자마자 책 구독서비스 트라이얼을 신청했다. 며칠에 걸쳐 더 시크릿을 세 번 연속으로 읽으며 내가 정확히 뭘 잊고 살았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미래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현재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은 내가 비밀을 다시 필요로 할 때 갑자기 인생에 나타났다. 그리고 한참 전에 읽었던 이 책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내게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 나를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일, 나의 가치관을 지키고 잠재력을 발휘할 일, 다시 나를 내 삶의 주인공으로 돌려놔줄 일을 나도 모르게 이미 미친 듯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다만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내가 끌어당겨 온 것을 기회로 보지 못하고 의심하며 흘려보내고 있었다.
책값에 대한 부담과 분노가 갑자기 사라졌고 너무나 담대하고 당연하게 책서비스 1년을 구독했다. 한 달에 30분만 더 일해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작은 돈에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온라인 구독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서 마음속으로 우주에 절을 했다. 그걸 시작으로 느리지만 한 권씩 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어나갔다. 내게 책을 읽으라고 해준 멘토에게 너무나도 고마워서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다.
 

몇 개월동안 내가 정확히 상상하며 끌어당겼던 사람이었다

몇 개월 뒤,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본격적으로 소셜 마케팅을 시작했고 아침마다 한숨을 내뱉는 대신 거울 앞으로 달려가 카메라를 켜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매일을 보내다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만나서 얘기해 보니 몇 개월동안 내가 정확히 상상하며 끌어당겼던 사람이었다. 소름 돋게 놀라웠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 사람은 내 파트너가 되기로 했다. 어떻게 이 사람을 도와야 할지는 아직 잘 몰랐지만 곧 내가 그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임을 믿었다.
그렇게 만난 내 첫 파트너는 나에게 혹시 <시크릿 더 매직> 편을 읽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시크릿 매직을 실천하며 생겼던 놀라운 일들을 내게 말해주었다. 원하던 일자리를 얻었고, 원하던 사람을 얻었다고 했다. 물론 모든 결과가 다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경험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고 앞으로 올 기회들이 너무 설렌다고 했다. 나에게 먼저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낼 용기를 낸 것도 더 매직의 효과라나.

시크릿 매직은 28일간 비밀을 아는 것을 넘어 매일 마음속으로 감사를 실천하고 끌어당김을 습관화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물론 시크릿에 대한 긴가민가한 믿음정도라도 먼저 있는 것이 좋다. 나는 더 시크릿 이후의 번외본들은 접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의 강력 추천에 따라 더 매직을 읽으며 28일간 매일 함께 감사일기를 서로 공유했다. 나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사실 감사할 일이었다. 오늘도 눈을 떴음에 감사했고, 온 우주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매일 깨달았다. 결국 이 책은 종이책을 구매했다. 그 후로도 감사의 마음이 고갈되고 있음을 느낄 때면 책을 다시 편다. 
 
나는 그 뒤로 계속 책을 읽고, 마인드피딩을 한다. 계속 혼자서도 글을 쓴다.
밝은 사람은, 밝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늘을 부지런히 빛으로 채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에겐 그늘이 있음을 안다. 나는 늘 희망차고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빛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싶은 꿈이 있다. 빛을 무한하게 나눠줘도 내 안의 빛이 절대 모자라지 않을 만큼 채우려면 정말로 부지런히 채워야한다.
그렇게 채운 빛으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지금 거대한 그늘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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